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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의 역사와 문화

[2010년 4월1일]
우지의 역사와 문화

예로부터 우지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야마토 정권이 드디어 기초를 다지고 있던 때, 오진 천황의 후계를 둘러싸고 형인 닌토쿠 천황에게 황위를 양보하기 위해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고 전해지는 우지노와키이라쓰코의 이궁이 현재의 우지가미 신사・우지 신사 주변에 있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지바시 가교가 생긴 후에는 나라・교토・시가를 잇는 수륙교통의 요충으로써 역사 속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헤안 시대에는 영화를 다한 후지와라씨의 별장지로써 화려한 왕조 문화를 꽃피워 극락정토를 이 세상에 구현하려고 한 뵤도인 호오도는 그 상징으로써 지금도 그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지는 또한, 만요슈나 헤케 이야기 등의 다수의 문학에 등장합니다.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겐지 이야기」가 우지주죠의 무대인 것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도가노오 고잔지의 묘에가 우지에 차를 전했습니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의 비호하에 우지는 그 산지로써 명성을 드높여 정치 중심이 에도로 옮겨진 후에도 우지차는 고급차로서 귀중하게 여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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